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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에 제정된 영국의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zabeth Poor Act)이 현대의 사회복지사업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봉건적인 기사 계급이 해체되고, 종교 개혁 이후에 교회의  영토가 국왕에 의해 몰수되면서 그 전까지 교회와 영주의 울타리 안에서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다수의 빈곤 계층이 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시기였습니다. 아울러, 이른바 '종획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인해 농민들은 농지를 잃고 도시의 부랑인이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면서, 거리의 빈민이 급속히 늘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빈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엘리자베스 구빈법'입니다. 아래에서는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zabeth Poor Act)의 등장 배경과 주요 내용, 특징과 한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자베드 구빈법의 등장 배경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zabeth Poor Act)은 영국에서 160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에서 15세기부터 17세기는 이른바 '절대왕정의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과 '임금 노동'의 체계가 형성되는 과도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에는 이전까지 교회와 영주가 중심이 되어 작동했던 '자선적 구빈체계'가 무너지고, 이른바 '종획운동(Enclosure movement)'에 의해 토지로부터 쫓겨난 많은 소작 농민들이 노동력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빈민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종획운동이란 쉽게 말해 '울타리 치기 운동'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모호했던 공유지나, 개인 간에도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았던 땅들에 대해, 지주들이 울타리를 쳐서 사유지임을 명시하고 지주의 영토로 구획을 정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대손손 공유지라 여겨 왔던 넓은 들과 숲에서 땅을 일구고 땔감을 구하고, 소나 양을 목축하며 살아오던 농민들은 이러한 땅들이 지주의 사유지가 되자 생계 터전을 잃게 되었고, 분에 못 이겨 울타리를 부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먹을 것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밀려 나오게 됩니다.

이전 중세시대에는 전통적으로  '근로능력(노동능력)이 없는 빈민'을 자선의 대상으로 간주해 왔는데, 이 시기에는 오히려 '근로능력이 있는 빈민'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즉, 중세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가 몰락하면서 생기는 경제적인 무질서, 그리고 사회적 혼란의 시기에 부랑인과 걸식자 등 빈민층이 증가하자 사회불안이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사회 지배층은 국가에 의해 빈민들을 관리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증가하는 빈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엘리자베드 구빈법'입니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의의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zabeth Poor Act)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제도와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동안의 빈민 구제를 위한 여러 법령들을 집대성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영국의 조직적인 구빈사업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처음으로 빈민의 구제를 정부의 책임으로 인식한 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근대적인 사회정책(social policy)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이후에도 3백여 년 이상에 걸쳐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국가와 미국 등에서 빈민 구제 사업의 기본법이 되어 왔습니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주요 내용

적용 대상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빈민을 "근로능력(노동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 근로 능력이 있는 빈민: 신체적으로 일할 능력은 있으나 부랑인 등 일자리가 없거나, 일할 의욕이 없는 빈민
  • 근로 능력이 없는 빈민: 병자(아픈 사람), 노인, 장애인 등 신체적으로 일할 능력이 없는 빈민
  • 보호가 필요한 아동(요보호 아동) : 가족이 없거나 부양하기 어려워서 공적인 부양을 필요로 하는 아동

보호 내용

구빈법은 적용 대상의 유형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세가지 조치를 적용하였습니다. 다만, 세부적인 조치 내용 또는 구빈의 내용은 지방 행정의 단위인 교구마다 처한 재정 상황이나 행정체계에 따라 달랐습니다.

  • 근로 능력이 있는 빈민은 노역장(작업장)에서 강제로 노동을 하도록 하였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형벌에 처한다.
  • 근로 능력이 없는 빈민은 '구빈원'이라는 시설에 수용하여 시설 보호를 실시한다.
  • 보호가 필요한 요보호 아동은 아동을 위탁받아 키우기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입양 등 위탁보호를 하도록 맡기거나, 일정한 작업장 등에서 도제생활을 하도록 한다. 

행정 체계

구빈법에 의하면 빈민 구제의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습니다. 당시 지방정부 역할을 하는 것은 교회의 '교구'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의 교구는 교회의 기능과 함께 지방 행정의 최소 단위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였습니다. 구빈법에 의한 구빈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 각 지역의 교구마다 구빈행정 담당기관을 만들었으며, 여기의 '빈민 감독관'이라는 사람에게 구빈 행정을 총괄하게 하여 지방 정부의 빈민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재원

구빈법의 시행에 필요한 재원은 지방 정부의 재정에 의해 충당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교구의 주민들이 부담하는 '구빈세'가 재원이 되었고, 그 밖에도, 주민들이 법률을 위반할 경우 부과하는 과태료, 교구의 부동산과 같은 재산 등에서 나오는 수익을 활용하여 운영했습니다. 구빈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방의 교구에서 빈민 구제 활동을 일종의 '자선행위'로 수행해 왔다면, 구빈법 이후에는 교구가 정부가 징수하는 구빈세에 의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공식적인 구빈 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에 대한 평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국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zabeth Poor Act)은 다음과 같은 점을 특징으로 한다.

  • 구빈법은 빈민을 통제하고 관리할 필요성에서 만들어졌지만, 빈민 구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법입니다. 
  • 구빈법은 빈민 구제(구빈)의 원리를 법률로 확립하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구빈행정기구를 만들었습니. 다만, 구빈의 내용은 지방 교구마다 재정에 따라 달랐습니다.
  • 구빈법은 구빈활동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구빈세를 징수함으로써, 정부(지방 정부)의 재원에 의한 구빈이 처음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구빈법은 빈민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자선을 베풀거나, 무차별적인 징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빈민들의 특성에 따라 유형을 구분하여 각각에 맞는 대책을 강구하였습니다. 즉, 구빈법에 의해 처음으로 정책의 대상인 빈민(클라이언트)들의 특성에 대한 고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 이전 봉건시대의 구빈활동과는 다르게 이 구빈법은 빈민 구제를 조직화하고 또 공식화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그 목적이나 배경이 '빈민에 대한 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빈법은 빈민 구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 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 따라서, 구빈법은 빈곤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앞서 여전히 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부양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빈곤은 개인의 나태함, 게으름, 일하지 않으려는 성격 등 개인적 특성에 의해 생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빈곤은 개인 탓'이라는 빈민관은 빈민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이나 열악한 처우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 구빈법에 의한 구빈활동이 각 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지면서 빈민들에 대한 다양한 억압과 낙인(stigma)이 부여되었습니다. 즉, 빈민의 이름을 공개하거나, 구빈법에 의한 구빈 대상자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는 옷을 입게 하는 등 빈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구빈 신청을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본질은 빈민의 구제를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당시의 사회 지배층이 빈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수단으로 만든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빈민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사회 권력층이 빈민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지키려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Webb 부부(Sydney Webb and Beatrice Porter Webb)가 구빈법을 "억압을 통한 구제"라고 부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