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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흘렀지만 'KBS 스페셜'에 "죽음이 삶에 답하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 그리고 인간다운 죽음을 고민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앞두고, 우리가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지점들이 이 한 편의 방송에 다양하게 등장하였기에 오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좋은 죽음과 존엄한 생애말기의 과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죽음이 삶에 답하다"가 말하는 단상들을 다시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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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 답하다'의 장면들

네덜란드 소원재단의 마지막 소원

네덜란드에 있는 엠뷸런스 소원재단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비영리단체입니다. 환자의 가족들이 이 재단에 연락하면 엠뷸런스로 죽기 전에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 줍니다. 이들의 소원도 다양합니다. "내가 살던 집에 마지막으로 가고 싶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어릴 때 살던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딸아이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다", "미술관에 가 보고 싶다"라는 소원을 신청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말기 환자는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합니다. 소원재단에서는 이 분이 누워 있는 침대를 엠뷸런스에 싣고 아들, 가족,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갔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 환자를 위해 직원들이 침대를 직접 들고 바닷가를 걷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행하여 마지막 여행을 하며 작별을 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분은 행복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마지막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호주의 세계적인 생태학자입니다. 104세가 되자 자신의 삶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손자 손녀들에 둘러싸여 마지막 시간을 행복하게 보냅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을 듣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스스로 약물 주입 버튼을 누릅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안락사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는다면?  임종 체험하기

 
이 프로그램은 또한 우리나라의 한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임종체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죽음과 장례를 미리 체험해 보게 하는 것입니다. 장례식장에 자신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고, 관에 들어가 눕습니다. 뚜껑을 닫으면 캄캄한 공간에 누워 죽음을 느껴 봅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조문을 옵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고,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합니다. "만약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져 줍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질문입니다.
 

대만의 무언의 멘토, 말 없는 선생님 

죽음의 질에 있어서 특히 말기 환자를 다루는 의료인들의 역할이 큽니다. 그래서 좋은 죽음과 존엄한 생애말기를 위해 의료인들에 대한 죽음 교육이 중요합니다. 대만에서는 의대 학생들을 위한 시신 기증자를 ‘무언의 멘토’, 즉 '말 없는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여기서는 학생들이 해부 실습을 위해 시신을 기증해 준 고인을 얼마나 얼마나 극진하게 예우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고인의 가족을 초청해 생을 되돌아보는 추도식을 열고, 며칠간 정성을 다해 해부 실습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며칠간 장례 예식을 하고 가족과의 행사를 가집니다. 이는 미래의 의료인이 될 학생들에게 단순히 해부 학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을 성찰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인들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좋은 죽음은 기본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은 흔히 복지국가의 구호로 사용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국가가 모두 보장해드립니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1942년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국가의 촘촘한 사회보장 제도'를 표현하는 용도로 자주 사용됩니다. ‘생애주기별 복지 서비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태어나서 부터 죽을 때까지 생애 단계별로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 과연 '좋은 죽음'을 위한 정책이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출산을 위한 정책은 다양해도 고령사회에서 '좋은 죽음'을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고, 아직 논의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아마 호스피스 완화의료나 연명의료 자기결정 제도가 유일하겠지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은 모두의 기본권이듯이, '좋은 죽음'을 누리는 것도 기본권입니다. 고령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좋은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의 인식과 제도의 틀을 갖추는 것입니다.